2007년 12월 02일
[생각의 단편] Martin Luther King의 I have a dream 그리고 Rhetoric
100일 휴가 복귀를 목전에 두고 어쩌다 다시 읽어보게 된다...
'나'의 단편... 그리고 재발견...?
Ⅰ. 들어가며
‘진리’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 상대에게 언어로써 전달될 수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보는 관점이 있는 반면, 진정한 진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관점도 있다. 이러한 두 관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진리’라는 것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인간은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필연적인 한계를 가지게 된다. 수용하는 쪽에서는 자신에게 전달된 신호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일단의 인지적인 ‘해석’의 문제를 안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있어서 진리에 대한 두 관점의 대립은 결국 진리라는 것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적 한계를 자체 내에서 포괄하여 존재하여 구성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이를 초월하는 ‘그 자체’인가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에서 ‘레토릭’은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레토릭은 진리 그 자체를 사회적으로 전달하는 대단히 강력한 수단이다. 여기서 진리는 사회적인 구성체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또한 레토릭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연적 진리 역시 긍정한다. 곧, 레토릭의 논의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것을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인 소통을 이루려는 논의 역시 포괄한다고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현대 레토릭의 정수를 보여준다 할 수 있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의 연설 『I have a dream』을 다루려 한다. 『I have a dream』은 미국의 인종 차별 현실에 맞서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연설이다. 연설은 일관되게 인종 차별의 철폐에 대해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여기서는 이를 분석함으로써, 이른바 ‘좋은’ 레토릭은 무엇이며, 그것이 진리와 관련되여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Ⅱ. 본문
1. 수용과 고양의 문제
훌륭한 레토릭은 상대에게 자신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인지적으로 일어나는 피로와 거부감을 최소한도로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메시지를 받았을 때,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일종의 ‘인지적 피로’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는 메시지, 그리고 그 내부의 진리에 대한 미숙한 이해, 혹은 거부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레토릭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본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지적 체계에 대한 이해의 논의를 바탕 한다 할 것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이성적, 논리적 존재로 기능할 수는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기존에 형성된 인지적 체계를 바탕으로 주변을 ‘해석’하는 존재이며, ‘진리’역시 이를 기반으로 취사선택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레토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체의 메시지가 모두에게 수용되어야 하며, 그 메시지가 담고 있는 진리가 가장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송신자는 수신자가 가지는 사전적 인지 체계의 한계를 조절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존 수용자의 인지 체계와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충분한 사전 전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변증술 과는 달리, 레토릭은 이것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의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레토릭을 구성하는데 있어 전제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공유하는 진리’ 즉, 보편적 이념을 기반으로 구성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I have a dream』은 이러한 레토릭의 원리를 잘 따르고 있다. 연설문 전체에서 킹 목사는 ‘America’, ‘Dream’, ‘People’등의 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미국의 독립 선언과 헌법과 같은 기본적인 국가적 가치로 공유되는 텍스트, 그리고 성경이라는 보편적 텍스트를 지속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연설은 이 연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논의가 ‘미국’이라는 하나의 사회와, 이를 구성하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청자에게 사전적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연설의 논의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관련되는 ‘보편적’ 논의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청자는 일종의 ‘인지의 벽’을 개방하게 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다. 여기서 인간이 타자와 소통하면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외부적 자아의 영역은 특히 중요하다. 이 영역의 인지로 인해 개인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형태를 인식하고, 그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메시지가 이러한 논의를 포괄한다고 인식할 때, 이는 일종의 ‘사회적 증거’이자 ‘기대’로 작용하여, 수용자에게 강력한 힘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이 연설문은 수용자에게 일종의 사회적 목적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를 내면화함으로써 얻어지는 감정의 고양을 함께 가져오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레토릭에서 Pathos 즉, 감정적 요소가 중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또한 감정의 동물이기도 하다. 연설문은 하나의 목적을 상정하고, 이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지는 일종의 자긍심, 그리고 사회적 증거로 인한 자신감을 고양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설의 청자는 단순히 목적성을 내면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 고양에 의해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게 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2. 논리적 문제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에 대한 논의에서 여기에는 반드시 완벽한 논리의 정합성이 요구되지는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레토릭은 기본적으로 청자와 화자 사이에 공유되는 일종의 인식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정합적인 삼단논법 보다는 대전제에서 결론을 바로 이끌어내는 이단논법의 논의를 따르게 된다.
이단논법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논리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인지적 피로를 줄이려는 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화자는 엄격한 논리적 정합성이 가져오는 논의의 제약을 뛰어넘어, 보다 강력한 도약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도약(혹은 비약)이 ‘그럴 듯 하게’ 보이는데 레토릭의 정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연설문으로 돌아가 보자. 『I have a dream』의 전체적인 논의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인종 문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곧 정의이며, 올바른 길임을 주장한다. 여기서 사용된 이단논법을 몇 개 들어보겠다.
1) 미국의 독립 선언서는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2) 흑인은 불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
흑인 민권 운동을 행하는 것은 (미국의 독립 선언과 같이) 정의롭고 옳은 것이다.
1) 신은 폭력을 원치 않으신다.
2) 우리는 흑인 민권 운동을 비폭력적으로 행하려 한다.
그러한 이유로, 신은 흑인 민권 운동을 지지하신다.
이와 같은 주장은 엄밀한 의미에서 일종의 논리적 ‘비약’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단히 강력한 증거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단논법의 논의를 보다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I have a dream』 연설문 거의 전체에 걸쳐 사용된 비유적 표현 방식이다. 연설 전체에서 마틴 루터 킹은 비유, 대유, 은유 등을 폭넓게 사용한다. 가령 한 구절을 들어보자.
It is obvious today that America has defaulted on this promissory note insofar as her citizens of color are concerned. Instead of honoring this sacred obligation, America has given the Negro people a bad check, a check which has come back marked "insufficient funds." But we refuse to believe that the bank of justice is bankrupt. We refuse to believe that there are insufficient funds in the great vaults of opportunity of this nation.
이 구절에서 흑인의 열악한 인권 상황은 ‘부도수표’라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언급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틴 루터 킹은 ‘현금을 되찾는’ 행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수표-금고의 논의와 권리의 논의 사이에는 본질적 연계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내포된 메시지 역시 일종의 이단논법으로, 논리적 정합성에서는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틴 루터 킹은 이 두 논의를 결합시킴으로써, 논리적인 ‘그럴듯함’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그러한 알레고리를 통해 청자를 납득시킨다. 즉, A로 비유되는 B가 진실이라고 여겨진다면 A 역시 진실이라는 일종의 논리적 도약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방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종교 지도자들이나 대중 선동가들이 많이 인용한 방식이다. 비유는 현실과 실제적인 연관의 필연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쉽게 ‘그럴듯함’의 논의로 수용될 수 있기 때문에 널리 인정된다. 가령, 부처나 예수의 설교는 거의가 이러한 비유로 이루어져 있으며, 히틀러 역시 이러한 비유적 표현들을 폭넓게 활용했다.
3. ‘진리의 표상’이라는 문제
지금까지 텍스트 중심으로 레토릭으로서의 『I have a dream』이 가진 전달력의 효과성에 대해 논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전달력의 논의에 앞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전달이 근본적으로 ‘진리’를 표상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굳이 진리에 대해 플라톤과 같은 엄격한 입장을 견지하지 않더라도, 구현자의 입장에서 각종 레토릭적 기법들을 거치면서도 본인이 의도한 진리가 ‘충실하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가능한 것이다.
레토릭의 논의는 다수에 대한 진리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그에 따라 보편적이고 비정합적인 논의를 채택하게 됨으로써, 자체 내에서 ‘왜곡’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현대의 레토릭은 다수에게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악용된 집단적 폭력이나 소외 역시 가중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오류의 가능성을 방지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논의라 할 것이다.
흔히 많은 대중 연설들은 하나의 지향점과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그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적 측면은 대단히 모호하게 언급하는 경향을 띤다. 그리고 여기서 메시지의 왜곡은 현실적 실현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I have a dream』역시 이러한 점에서는 취약한 구조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설 내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비정합적 논리 구조, 그리고 비유의 사용, 그리고 보편적 ‘이상’에 대한 반복적 언급은 그 자체 내에서 이와 같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I have a dream』은 일종의 ‘제동’을 걸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연설은 흑인 민권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연설 내에서 지속적으로 ‘비폭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I have a dream』이 가진 메시지의 내용적 측면의 문제라는 한계를 지닌다. 레토릭의 논의는 여기서 하나의 딜레마에 표착하게 된다. ‘좋은’ 레토릭 자체는 그 방법적 측면에서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한다. 즉, 가장 좋은 레토릭이 곧 가장 위험한 레토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충분히 조절하여 레토릭이 곧 ‘진리의 표상’이 되도록 하는 것은 레토릭이라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는 일종의 ‘책임’의 문제로 전이된다.
Ⅲ. 결론
지금까지 마틴 루터 킹의 연설 『I have a dream』을 통해 ‘레토릭’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원론적이나마 접근을 해보았다. 좋은 레토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있어서 이는 궁극적으로 수용자의 인지에 대한 이해의 문제와 연관된다. 마틴 루터 킹은 이러한 논의에 정통했고, 그 결과 『I have a dream』 연설은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에 있어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글의 논의에서는 레토릭이 가지는 필연적인 한계성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과연 진리에 충실하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그리고 그 결과 글의 서두에서 제기했던 ‘진리’에 대한 관점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된다.
참고문헌
Martin Luther King Jr, 『I have a dream』, Retrieved May, 24, 2007 from http://www.usconstitution.net/dream.html
# by | 2007/12/02 19:28 | 끄적끼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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